태어난지 20일째 꼬물이(라고 하기엔 조금 큰 덩어리).
조리원에서 금요일에 퇴소해 바로 그날부터 산후관리사님을 모셨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금토일 3일을 아기와 보낼 수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퇴소 후 10시나 넘어 집에 도착할텐데 깔끔하게 월요일부터 관리사님을 오시라고 해야하나 고민했지만,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
관리사님은 집을 둘러보며 부족한 집기들을 쭉 짚어주셨다. 젖병건조대, 스와들스트랩, 여름용 메쉬속싸개 두어장, 수딩젤 기타등등.. 남편과 나는 아이를 맡기고 부랴부랴 근처 베이비하우스에서 필요한 것들을 사가지고 왔다. 아이를 낳고 처음으로 다시 조수석을 탈환한 외출이었다. 항상 당연하게 느껴지던 내 자리에 앉는다는게 새로운 일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시작한 아이와의 동거생활. 초보엄빠로서 어려운 게 한두가지가 아니다. 사실, 의식주 모든 방면에서 정신이 멍해진다.
1. 수면패턴과 울음
그 누가 생후 30일 이전 신생아는 1시간-1시간반정도 밖에 깨어있지 못하고 먹고 잠들고, 또 먹고 또 잠들고의 연속이라고 했나. 이 친구는 밤에는 그나마 먹고 자고 패턴을 반복하다가(이것도 텀이 그리 길지는 않다. 1시간-2시간 반정도. 2시간 반 자면 풀잠 때린거다.) 아침 7시만 되면 귀신같이 밥을 먹고도 자지 않는다. 그리고 계속 더 밥을 달라는 것같이 울다가 안겨서 잠에 드는데, 그렇게 잠든 친구를 침대에 내려놓으면 귀신같이 다시 강성울음으로 울기 시작한다. 정말이지 관리사님 오시는 9시까지 꼼짝없이 아이를 안고 있어야 한다.
수면교육? 잠들기 전 내려놓기? 20일차 아이에게 가능한 일일까..? 충분히 먹이기? 수유 중 잠들지 않게 깨우기? 무엇하나 쉽지가 않다.
2. 목욕이 싫어!
이 친구는 목욕을 꽤나 싫어한다. 목욕물에만 닿으면 자지러지듯 우는데, 산후관리사님도 세번째 시도에서야 칭얼거림 정도로 목욕을 얼추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마저도 마지막엔 인내심의 한계에 달했는지 울음으로 끝났다. 그러니 초보 엄빠가 한 주말목욕은 말해 무엇하나. 정말 악을 쓰며 우는 것이 이러다가 아기 탈수 오는거 아닌가 걱정될 정도. 주말 목욕이 다시 또 두려워진다. 그래도 조금씩 산후관리사님의 목욕에는 적응이 되는 것 같아 다행이다.
3. 밥 밥 밥주세요
수유텀이란 뭘까, 인위적으로 맞출 수 있는 것인가? 모유수유는 아기가 얼마나 먹었는지 알수가 없다쳐도, 분유나 유축수유를 할 때도 어느때는 90ml를 먹고 3시간 넘게 자는가 하면, 어느때는 110ml를 먹고 한두시간만에 깨버리곤 한다. 그래서 새벽수유 때는 아기가 2시간 반정도 잘걸 예상하며 2시간 후 알람을 맞춰놓고 일어나 30분 정도는 아이쪽을 바라보고 아이가 쩝쩝 입맛을 다시는지, 용을 쓰진 않는지 들으며 선잠을 잔다. 새벽수유시 아이를 깨운다고 한쪽가슴을 먹이고 아이가 다시 잠들 즈음 기저귀를 갈아 깨워 다른쪽을 먹였는데, 이젠 아이가 잘 깨지도 않고(기저귀갈기 스킬이 늘었나...?), 중간에 아이를 안았다 눕히며 한번 크게 게운 이후로는 최대한 쭉 양쪽을 먹이려 시도한다. 낮에는 성공했는데, 오늘 밤에는 과연 괜찮을지...
20일째 저녁에는 결국 아이를 안고 울어버렸다.
산후관리사가 퇴근하고, 남편이 퇴근하기 전 몇시간 남짓한 동안 아이를 배불리 먹이고 재웠(다고 생각했)는데, 한숨 돌리고 유축을 하려는 순간 아이가 갑자기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지르며 깨더니 쉴새 없이 울었다. 아이를 안고 달래도 달래지지 않고, 밥은 고작 1시간 전에 먹였는데 다시 먹이면 탈이 날 것 같고, 쪽쪽이를 물려봐도 진정되지 않는 강성울음이 계속 됐다. 이렇게 우는건 어디 아픈게 아닐까? 이게 영아산통인가? 아니면 내가 방금 전 수유때 트림을 했다고 너무 빨리 눕혀서 소화가 안됐나? 별 생각이 스쳐지나가는데 아이는 내 귓가에서 소리소리를 지르니 정신이 멍해졌다. 영아산통 유튜브를 크게 틀어놓아도 아기 울음소리가 더 크게 울리니 어느 순간 나도 같이 주르륵. 갑자기 울다가 내 얼굴을 또랑하게 쳐다보는 아기를 보며 또 주르륵. 내 마음을 알 일이 없는 아이는 또 다시 같이 오열...
야근으로 늦은 남편이 집에 도착해 내 모습을 보고 얼른 본인이 아기를 보겠다며 데려갔다. 침대에 멍하니 쉬다가 아기기저귀 쓰레기통이 다 차서 버리러 나갔다. 남편은 본인이 버리겠다고 했지만, 잠깐 바람이라도 쐴 겸 나갔다오니 그게 뭐라고 좀 진정이 됐다. 고작 몇 시간이었을 뿐인데 그렇게 사람이 지칠 수 있나. 조금씩 쌓인 피로감이 강성울음의 파도에 휩쓸려 잠깐 정신이 흔들렸나보다.
이날 아이는 처음으로 4시간 가까이 잠을 잤고, 나도 처음으로 새벽수유 중 한번은 남편에게 맡겼다. 모유수유를 계속 하고 싶어 손목 건초염은 아직 치료하고 있지 않은데, 다시 병원에 들려 약이 필요하다면 잠시 중단하는 것도 고려해봐야겠다. 아기가 크면서 울 날이 더 있을테니 지금부터 몸과 마음을 단단하게 제련해 나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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