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일기에 가까운 사사로운 기록. 나의 임신 그리고 어쩌면 육아 이야기.
0. 가족계획과 의사의 합치
91년생 동갑부부, 기혼. 언제라도 가족계획을 세워도 이상하지 않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아이들을 정말 좋아하는 편이었기에 딩크 생각은 하지 않았고, 때가 되면 어련히 아이도 있겠지, 싶었다.
남편은 항상 '임신과 출산은 전적으로 여자가 결정해야 하는 것'이라며 어떤 의견도 표출하지 않았지만, 가끔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 '나는 외동으로 외로웠기 때문에 형제자매가 있는 게 좋아보인다.'라던지, '아이를 안낳고 우리 둘이 재밌게 지내도 좋고, 아이를 낳을거면 40 전에만 낳았으면 좋겠어.'라던지 이것 저것 생각을 하고 있긴 하는 듯 했다. 남편이 내 생각을 존중해 주는 것은 고마우면서도, 어차피 그나 나나 아이를 낳는 쪽에 가까운 이상 '너가 결정해'라며 내버려 두기 보다는 '너가 힘들테지만 내가 많이 노력할게~'라는 더욱 다정한 말을 듣고 싶기도 했다.
이렇게 그냥 저냥 직접적으로 우리가 무엇을 준비해야하고, 언제 임신준비를 시작해서 언제까지는 아이를 낳자,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고 시간만 보냈다. 그래도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준비를 해보자며 서울시 보건소 산전검사를 받기도 했다.
https://seoul-agi.seoul.go.kr/pregnancy-preparation-application
서울시 남녀 임신준비 지원사업으로 남녀 모두 (1) 거주 주소지 또는 (2) 직장 주소지 보건소에서 산전검사를 무료로 받을 수 있었는데, 주소지 보건소는 예약을 잡기가 너무나도 어려워 나혼자 직장 주소지 보건소에서 평일 오전 검사를 예약했다.
(남편 직장은 경기도에 있는데, 보건소에 전화하니 청첩장이나 가족관계증명서, 서울시 재직 배우자의 재직증명서를 제출하며 함께 배우자 직장 주소지 보건소에서 검사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평일 스케쥴을 같이 잡기 어려워 나혼자 갔던 것)
산전검사에서 난소나이 검사도 진행했는데, 내 실제 나이보다 살짝 수치가 낮아서 걱정했던 기억이 난다. 요새 내 또래들은 다들 30 넘어 결혼하고 거진 서른 중반 즈음 임신 출산을 고민하기 때문에, 혹시라도 아이 생각이 있다면 난소나이 검사를 받아보는 것을 추천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와 급하다, 빨리 임신준비를 해야겠다!' 경각심을 가진 건 아니었다. 아직까지도 내 친구들 중에는 아이를 낳은 사람보다 아닌 사람이 훨씬 많았고, 나를 포함해서 모두들 임신, 출산과 직장생활 병행의 어려움, 이후 호된 k-사교육의 면면을 보며, 결혼해서 겨우 둘이 적당히 먹고 살만한데, 새로운 인생 퀘스트를 -그것도 시작하면 절대 되돌릴 수 없고, 내 노력과는 다른 결과가 나오기 마련인 불확실성 덩어리의 퀘스트를- 시작해야하는지, 도저히 확신할 수 없었다.
노트 중간에 세로줄을 그어 왼편엔 아이를 낳아야 하는 이유와 오른편엔 그렇지 않아야 할 이유를 쓴다면, 그저 오른편만 빼곡히 채워질 것이 보여서 이성적으로는 출산이 도저히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고민의 시기가 길어지며, 왼편에 쓸 문구 한 줄이 점점 더 명확해졌다.
'그냥 내가 낳고 싶기 때문에.'
그냥 날 닮고, 남편을 닮은 아이의 얼굴을 보고 싶어서. 아이 의사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아이를 보고 싶고, 그러면 아이를 낳을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분명해졌다. 전적으로 내가 결정해서 낳는 아이이기 때문에, 힘들고 불안한 사회에서 아이가 행복할 수 있도록 내가 지켜주고 품어줘야 하나보다, 이정도 의식의 흐름이 진행될 즈음, 같은 고민을 하던 친한 친구가 갑작스레 임신소식을 전했다. 친구는 내게 정말 이렇게 빨리 임신이 될 줄 몰랐는데 알고보니 임신 7주였다며, 불안과 놀라움, 혼란이 뒤섞여 전화를 했고, 나는 진심으로 축하해줬다.
그리고 친구의 임신소식을 남편에게 전하며 농반진반 우리도 그럼 준비를 해볼까? 라고 제안했고, 남편도 그러자며 흔쾌히 동의했다. 그렇게 친구의 임신을 축하하는(?) 치맥을 하며 우리도 시작하자라는 의사의 합치가 처음으로 이루어졌다.
1. 임신준비 - 생리주기 (flo )와 배테기(슈얼리즈)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친구처럼 예기치 못하게 임신이 됐더라,는 아니었다.
나는 꾸준히 생리어플을 사용했다. Flo 라는 어플을 이용했는데, 내 경우는 생리주기가 굉장히 규칙적인 편이라 어플의 예상 생리일이 대부분 정확히 들어맞았다. 그렇기 때문에 어플에 나오는 배란일에 맞추면 바로 임신을 하지 않을까! 아주 편안히 생각했다 ㅎㅎ 하지만 피곤한 직장인에게 배란일에 맞춰서 111이니, 222로 준비하는 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고, 나도 임신을 위해 그렇게 노력(?)하고 싶진 않았다. 아직까지 자연스럽게 ㅎㅎ 생기길 바라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자연스러운 가족계획에 가장 큰 걸림돌은 나의 급한 성격. 막상 임신준비를 한다고 하니 생리예정일 즈음되면 이번달에 혹시??라는 생각에 온갖 의심을 해대기 시작했고, 혹시나 싶어 테스트기를 해봤다가 명료한 한줄이 뜨면 그렇게 실망스러울 수가 없었다. 사람 마음이란 뭘까, 부모님이 그렇게 아이 생각 없냐고 물을 때는 그냥 생기면 가지고 아님 말거야! 라며 쿨하게 말했으면서, 나 스스로도 슬슬 임신해도 좋지만 편안하게 생각하자고 마음 먹었으면서 왜 막상 중간고사 후 꼬리표를 받아드는 심정으로 불안 초조해 하는걸까.
한 두달이 지나고 나는 매번 배란기 이후 생리예정일 즈음까지 한달의 절반을 전전긍긍하느니, 산부인과에서 배란초음파를 봐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런데 배란초음파를 보기로 예약까지 한 날, 급한 일정이 생겨 취소하며 또 다시 조급해졌다. 하. 배란일 하루 이틀 전이 가장 임신 가능성이 높다고 하던데, 아무리 생리주기가 정확하다고 하지만 어플만 보기엔 이제 좀 못미덥고. 아, 저번에 다른 친구가 배란테스트기를 쓴다고 하던데, 나도 해보자.
그날 당장 올리브영에 들어가 배란테스트기를 샀다. 임신테스트기와 비슷한데, 임테기는 아침 첫 소변이 가장 정확한 반면, 배테기는 오후 또는 늦은 저녁에 하는 걸 추천한다. 가장 중요한건 일관된 시간에 테스트해보는 것.
나는 슈얼리즈 배테기를 샀다. 슈얼리즈는 어플을 설치하면 카메라로 찍어 수치를 판독해주는데, 이게 정확한지는 잘 모르겠다 ^^.. 10이 가장 높은 수치고, 그 이후 수치가 뚝 떨어지면 배란이 된 거라는데, 난 결론적으로 딱 배테기를 사서 첫 테스트를 한 그날 10.0을 찍었고, 그 달에 임신이 되어 한 달이상 꾸준히 배테기를 써볼 시간이 없었다. 어쩌면 첫 달만에 됐으니 그만큼 정확하다고 해야하나... 왼쪽 선이 오른 쪽 선보다 명백히 진한가가 점수의 척도인데, 슈얼리즈는 보시는 것과 같이 10점 판정이 후하므로, 꾸준히 추적해서 본인의 배란 사이클을 파악하거나, 아니면 어플 점수보다 직접 테스트 선명도를 가늠해보는 게 중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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